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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_결혼&이별_이혼썰

편식심한 남편과 이혼한 썰..

by 썰푼공돌 2023.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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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얼마 전에 편식 심한 남편 고치는 법이라고 글을 올렸었는데 또 한 번 글을 올리게 되네요
제가 올렸던 글을 기억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글 올린지 딱 일주일이 됐는데 지금의 저는 이혼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혼은 남편이 먼저 요구했습니다
저랑 더이상 못 살겠다면서요

편식글 올리고 댓글 반응이 대부분 그냥 놔둬라~ 하시던데
편식은 언젠가는 꼭 고쳐야 한다고 생각해서 글 올린 날 저녁에 남편한테 진지하게 말했어요
편식 고쳐보는 건 어떠냐고 나 밥 차리기 너무 힘들고 당신 걱정 된다고
근데 다음날 아침밥 먹다가 갑자기 저랑 못 살겠다네요
제가 본인의 생활 방식을 존중해주지 않아서(편식 고치라고 자꾸 닦달해서) 인간 대 인간으로 무시당하는 느낌을 받았대요
한 번만 더 편식 고치라고 하면 이혼이래요


지난 글에는 편식만 적었지만 남편은 오감이 참 예민한 사람이에요

커텐 사러 갔을 때에도 컬러 차트를 뽑아가서 차트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색의 커텐을 사는 그런 사람입니다
컬러 차트도 인쇄기마다 색이 다르다며 본인이 보는 색과 정확히 일치하게 뽑아주는 인쇄소를 몇 군데나 찾아다니고요


식단 뿐만 아니라 평소에 요구하는 것들이 많았어요

~

집안 습도가 계절에 따라 확확 바뀌면 안 된다 가습기와 제습기로 습도를 일정하게 조절해달라

이불의 촉감이 늘 같아야 한다 일주일에 한 번 이불을 세탁하되, 이불 천이 헤짐을 감안해 세탁 세제 비율을 달리 해라(주별로 사용해야 하는 세제 비율을 엑셀 파일로 받음)

설거지 후 그릇은 크기별로(크고 넓은 게 안 쪽으로 향하게) 건조대에 세워 놓아라

컵은 투명하고 손잡이가 없는 유리컵에 직접 뜨개질한 홀더를 끼운채 사용해야 한다 홀더는 일정 주기마다 세탁해라

당신 머리카락은 A샴푸를 쓸때보다 B샴푸를 쓸때 더 뻣뻣하니 A샴푸를 사용해라 B샴푸를 사용한 날은 머리카락이 본인에게 닿아서는 안 된다

인테리어를 마음대로 바꾸면 안된다 바꾸거나 새로 구입하거나 버리기 전에 꼭 본인과 상의를 거쳐라
가구는 무조건 두 눈으로 실물을 확인할 수 있도록 오프라인에서 구매해야 한다

커피 원두는 특정 원두만 사용하되 원두 가는 시간과 물 붓는 횟수 적어서 드리퍼 보관통에 붙여둠

등등.. 많은데 다 적기가 힘드네요

~

피임기구도 까끌하다며 안 써서 제가 경구피임약을 복용하고 꾸준히 왁싱을 받아야 했습니다


딱히 결벽증이 있는 것 같지는 않고
감각이 예민하다는 말이 딱 맞는 것 같아요

연애 할 때에는 편식만 심한 줄 알았는데
결혼생활 시작하고 제가 집안일을 도맡다 보니까
이것저것 요구 사항이 늘어났습니다

애초에 본인이 사용하는 제품이 사소한 것까지 다 정해져 있는데 그걸 여분으로 사다두고
제가 조금이라도 실수해서 물건 상태가 변하면 물건을 아예 갖다 버리고 새 걸 사용했어요


이런 사람과 함께 살다보니 이전 글을 적을 때에는 이미 살이 30kg대까지 빠지고 탈모가 온 상태였습니다 생리도 끊기고요
살이 갑자기 확 빠져서인지 남편이 쓰는 물건들이 날카롭게 보이더라고요
남편의 칫솔모를 가지런하게 빗어서 정리하는데 칫솔이 저를 찔러 죽일 것 같았어요
집안 모든 물건이 제가 잘 하나 안 하나 감시하는 것 같아서 숨이 막혔어요

그래도 사랑하니까, 이거 빼고는 다 좋은 남편이니까 참고 살려고 했는데 이혼하자고 하더라고요
저랑 못 살겠다고요


저는 이혼 할 생각이 없었어요
남들이 보기에는 괴상한 생활이기는 해도 저는 차차 익숙해지는 중이었으니까요

근데 그냥 궁금했어요
연애할 때에는 데이트 하는 동안 불편한 거 다 참아가면서 만나놓고 왜 결혼하고 변한 건지, 지금은 왜 안 참는지 궁금했어요

그래서 나를 위해 당신이 조금만 참아줄 생각은 없냐, 나는 당신을 위해 이 모든걸 감수하고 있지 않냐 했더니 돌아오는 말이
'그땐 길어봐야 하루 이틀 참으면 됐는데(장거리였음) 매일 그러면 나는 미쳐버릴 거야 나는 지금도 충분히 참고 있어'

나는 이미 매일 매순간 남편이 요구하는 모든 것들을 참고 있는데
순간 아무 감정도 안 들더라고요
그냥 제 안에 있는 감정이 모두 녹아 없어진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저라는 인간이 먼지가 되어 사라진 기분이었어요
그래서 도장 찍어줬습니다

남편은 협박성으로 말 한 것 같긴 한데 제가 진심으로 끝내자고 했어요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를 가스라이팅 하려고 했나? 싶기도 하네요

저번에 올린 글에서 부모도 못 고친 편식을 제가 어떻게 고치냐는 말이 많았는데 그 말이 딱 맞아요
제가 사랑으로 보듬어주든, 그 사람이 저를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든, 어떻게든 극복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제가 너무 멍청하고 모자랐어요
사랑 하나만 보고 결혼한 제가 너무 멍청했어요 다 제 탓이에요
아껴주는 게 뭐라고.. 그깟 거 지나가는 개한테도 해줄 수 있는 건데


도장 찍은 날 이후로 제가 곡기 끊고 잠도 안 자고 누워만 있었더니 걱정이 되는 건지 아직 서류는 남편이 보관만 하고 있어요
그래도 저는 꼭 이혼할겁니다
기운 차리는대로 제가 어떻게든 처리해야죠


지금은 기운이 좀 나서 울기도 하고 지쳐서 잠도 자고 네이트판에 글도 적고 있긴 한데 현실에서 제가 뭘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그냥 가만히 있고만 싶어요

가만히 누워만 있으니 좋은 점은 제가 집안일을 안 하니 남편이 저 모든 까다로운 일들을 직접 한다는 거예요 ㅋㅋㅋㅋㅋㅋㅋㅋ 꼬셔요
진작 본인이 할 것이지..

아무튼 이혼하게 됐습니다
하 저 아직 20대 후반인데 앞날 창창한 거 맞죠?
맞다고 해주세요 ㅎㅎ..

신세한탄겸해서 쓰다보니까 너무 길어졌네요
쓸데없는 내용이 많아서 죄송해요
주변에 이런 얘기 털어놓을 친구가 없어서 자꾸 네이트판에 하소연하게 되네요


(이런 거 적으면 고소 당하나요? 나중에 지울게요)


이혼은 늦더라도 꼭 할 거니까 걱정들 마시고요
멍청해서 인생 조진 년인데 마치 본인 일처럼 화 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이혼하다가 모르는 거 있으면 또 조언 구하러 올게요
다들 건강 조심하세요

추가글

전 글에서 왜 편식 빼고 완벽하다고 적었냐는 말이 많은데
제 기준에서 편식은 그 사람의 예민함의 바운더리 안에 들어가 있는 습관이었어요
남편의 이런 부분이 문제가 된다는 건 인지하고 있었지만, 전 글은 아침 밥상 때문에 남편이랑 다투고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적은 거라서 그랬습니다
저도 남편 이상한 거 압니다
답답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어떻게 결혼했냐는 말도 많은데 연애 시절에는 정말 몰랐어요
장거리라서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 만나다 보니까 편식만 심한 줄 알았고, 연애 할 때에는 정말 정말 놀라울 정도로 잘 참았어요
근데 결혼하고 제가 살림 도맡게 되자 본인에게 맞춰야 하는 것(온습도, 반찬통, 청소 등등 10개 가량)을 서류로 작성해서 줬습니다
여기까지도 응? 했지만 감각이 예민하니까 그러려니 했어요
근데 1년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항목이 늘어나더니 이 지경까지 온 거예요
이것도 소개 시켜준 친구 탓 아니고 선택한 제 탓 맞습니다 조ㅔ송합니다

어떻게 참고 사냐는 말도 많은데
정말 이상하고 멍청한 소리인 거 아는데
진짜 이상하게 남편이 그러는 게 단순히 예민해서라고 느껴졌어요
남편이 남들도 이상한 거에 집착하지 않냐 본인은 그 정도가 심했을 뿐이다 뭐 이런 말들을 꾸준히 주장했는데
이상하게도 그게 맞는 말 같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가스라이팅 당한 것 같아요

서류는 남편한테 내일 접수하라고 말 해볼게요
남편 꼴 보기 싫어서 다 차단해놓고 대화도 안 하는 상태예요
만약 합의 이혼이 안 된다면 소송으로 가야 하는데 남편이 준 엑셀로도 충분하겠죠?
네이트판에 쓴 글도 증거가 될 수 있나요?
글을 삭제해야 하는지 그냥 남겨놔야 하는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들 걱정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신 차리겠습니다

네이트판 댓글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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