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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_결혼&이별_이혼썰

피임약 먹고 명절 준비하라는 남편 썰.. 후기.....

by 썰푼공돌 2023.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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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이 1000개가 넘어가는걸 보고 진짜 놀랐어요; 그래도 근무시간 틈틈이 댓글 전부 다 읽어봤습니다. 진통제 추천해주신 댓글도 여러개이고.. 감사해요 다음 생리 때부턴 추천해주신 것 중에 하나로 바꿔볼게요 생리통이 조금이나마 완화된다면 그것만으로도 글 쓴 보람이 있겠어요.


영문도 모르고 욕 먹는 남편의 변명을 제가 하자면;; 지난번 글에서 이거저거 다 빼고 딱 설 연휴 사건만 써서 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아요. 남편 성격이 화를 낼 때 표정이랑 말투가 진짜 무섭긴 해요ㅠ 나이차이도 좀 나는 편이라 더 아저씨?? 같고 무서운게 있습니다 ㅠ (8살 차이납니다 저는 20대 후반 남편은 30대 중후반) 근데 남편이 제 앞에서 화를 낸 적은 거의 없어요. 분노조절장애 이런거 아닙니다; 작년 가을 결혼한 이후로 이제까지 한 번도 둘이 싸우거나 화낸 적 없어요. 당연히 폭력, 폭언, 이런 것도 없죠. 제가 뭐 남편에게 잡혀산다 맞고사는거 아니냐 하고 걱정하시는 댓글이 보여서 제가 조금 변명을 해봤습니다;

 

제가 이 글이 퍼지는게 걱정이 되었던건, 혹시라도 남편이 알게 되었을 경우에 '왜 부부 사이의 일을 인터넷에 올리냐'라는 핑계거리를 남편이 갖다붙이면서 저와 남편이 싸운 이유 그 자체에 집중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제가 남편에게 불리해질까봐였어요.. 그런데 남편이 아직 모르는 것 같습니다. 이건 다행이에요.

아 또 하나만 더 남편의 변명을 하자면 ㅠㅠ... 시댁에서 남편이 누워만 있는데 왜 종년처럼 말도 못하고 일했냐! 독박가사 독박육아 확정이다! 이런 댓글이 많아서 변명을 좀 하자면요 ㅠ 신혼여행 다녀와서 첫 인사 갔을 때 다 같이 식사 하고 나서 설거지를 남편이랑 저랑 같이 했어요. 제가 퐁퐁하면 남편이 헹궈서 개수대에 올리고 있는데, 시어머니가 저희 옆으로 오셔서는 'oo아(남편) 이제 너도 결혼했으니까 늬 집 가선 설거지 할거 아니냐? 그러니 여기 와서는 oo이(남편)는 설거지 하지마라 엄마(시어머니)가 가슴 아프다' 라고 하셨어요...;; 그 땐 이미 손에 거품 묻어 있고 하니까 둘이서 마무리 하긴 했는데, 그 이후로 시댁 방문할 땐 그냥 제가 다 합니다 음식이며 설거지며. 그러기로 암묵적으로 합의가 됐어요.

 

대신 집에서는 서로 적당히 나눠서 하고 있어요. 다행히 퇴근이 제가 조금 더 빨라서 저녁 준비는 제가 하고요, 먹고 나서 설거지는 남편이 담당하고 있어요. 아침 식사는 둘 다 안 먹고 나가니까 상관없고, 그 외에 빨래 청소같은 집안일은 주말에 몰아서 하는데 남편이랑 그럭저럭 나눠서 하고 있습니다. 남편이 20대때부터 쭉 서울에서 혼자 자취했기 때문에 집안일에 능숙한 편이에요. 그러니까 독박가사 이런 걱정해주신 분들도 걱정 놓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ㅠ 얼굴도 모르는 남인데 같이 분노해주시고 걱정해주셔서 정말 힘이 됐어요 다시 한 번 감사드려요.

 


암튼 후기 올려보겠습니다. 막 속 시원한 사이다까지는 아니지만 그럭저럭 화해했어요.

사실 이번이 결혼 후 첫 냉전이었어요ㅠ 그전까진 작게 뭐 투닥투닥해도 잠들기 전에 다 풀고 그랬는데 이번엔 자기 직전에 싸운 거라 풀 시간도 없었고 다음날도 그냥 서로 말 안하고 지나갔고 ㅠ

이걸 어떻게 풀지, 내가 할 말은 어떻게 전달해야 하지, 이런것들 낮시간에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서 근무시간에 집중도 제대로 못하고.. 댓글 계속 읽어보면서 아 이렇게 말해야 했구나.. 하고 배운 것도 있네요. 그런데 뭐라고 말을 먼저 꺼내야 좋을까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친정에 도움 요청해보라는 조언도 있어서 낮에 엄마랑 잠시 통화했는데, 또 저희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그랬니? 그래도 니 할 일은 먼저 해야 너도 할 말이 있는거야' 정도로만 반응하셔서-_- 친정엄마 찬스는 없었습니다;

 

어제 남편이 퇴근 전에 저한테 카톡 보내서 '치킨 시켜먹을거니까 저녁밥 준비 따로 안해도 된다'고 했어요. 그래서 '아 화해하려고 자리 만드나보다' 생각했구요.


남편이랑 치킨배달이 거의 비슷한 시간에 와서, 치맥 하면서 얘기를 천천히 오래 했어요. 그래서 모든 대화가 다 생각나진 않네요; 간단히 요점만 적어볼게요.


남편 - 내 입장에선 여행 간다고도 먹는 피임약인데 며느리로서 첫 명절에 생리 예정이 있었으면서도 피임약을 먹지도 않고, 아프다고 일도 잘 안하려는 모습이 서운했다. 말을 하다보니 좀 화를 크게 낸 것 같은데 미안하다. 하지만 내가 서운한 점 자체는 잘 생각해보고 고쳐줬으면 좋겠다.

 

나 - 며칠전에도 말했지만 여행때도 무조건 피임약 먹는게 아니다. 물에 들어갈 일이 있다거나 하는 불가피한 상황에 어쩔 수 없이 먹은 거고, 그것도 내 인생 통틀어서 딱 두 번 먹었다. 피임약이 호르몬을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거라 자주 먹어서 좋을게 없다. 대신 생리를 하더라도 명절에 내가 할 일은 문제 없이 할테니까 그거가지고 뭐라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남편 - 그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명절에 며느리로서 할 일을 제대로 했으면 뭐가 문제겠냐. 너가 방에 들락날락할 때마다 우리 엄마 표정이 확 굳는게 눈에 보였다. 넌 설마 눈치 못 챘냐. 너랑 우리엄마는 며느리와 시어머니 관계이다. 시어머니한테 며느리가 찍혀서 좋을게 하나도 없다.

 

나 - 조금씩 쉬기는 했어도 내 할 일을 안하진 않았다. 어머님이 시킨건 요리며 뭐며 다 했다. 그리고 어머님이 표정이 굳으셨는진 몰라도 나한테 대놓고 말씀하신 것도 아닌데, 오빠가 나한테 그렇게까지 한 것도 좀 이해가 안간다. 독심술이라도 쓰나?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다음 명절부터는 조금씩 서로 도와가면서 하는 것도 어떨까 싶다. 재료손질은 내가 할테니 오빠는 전 부치는 것 같은거 해라.

남편 - 방금 한 말 다시 생각해봐라. 전 굽는게 뭐가 어렵다고 내가 못해주겠냐? 근데 그 후폭풍을 생각해야지. 큰 그림을 그릴 줄 알아야 된다. 내가 결혼 전에도 안하던 전 부치는걸 결혼 후에 갑자기 하기 시작하면 우리 엄마가 뭐라고 생각하시겠나? 니가 뒤에서 날 조종하고 바가지 긁어서 내가 전 부친다고 생각하실 거다. 그걸 우리 엄마가 가만히 보고만 있겠나? 그리고 그거 때문에 니가 더 미움받아서 앞으로는 우리 엄마도 일 아무것도 안하고 너 혼자 다하라고 하면 그 때가서 후회할거냐?

 

나 - 오빠가 결혼 전에 안했던게 이상한거다. 어머님이 그렇게 혼자 고생하시는데 아들로서 왜 안 도왔나. 다음 추석때부터 오빠가 전도 잘 부치고 그러면 어머님이 우리 아들 다 컸다고 대견해하실 수도 있다.

 

남편 - 그건 말장난이다. 추석 때 내가 전을 잘 부치면 엄마는 '우리 아들이 결혼하더니 돈도 버는데 집에서 요리까지 하나?' 라고 마음 아파 하실거다. 차라리 전 잘 못 부치고 허둥지둥할 때 너가 나서서 하겠다고 손 걷어부치면 보기에도 좋고 우리 엄마도 흐뭇해 하시겠지. 하여간 내가 다음 추석때 음식하는거 도와달라면 도와줄 수 있겠지만, 후폭풍은 니가 다 감당해라.

 

나 - 난 어머님이 그렇게까지 나오실거 같진 않다. 그리고 만약 그렇다고 해도, 오빠도 내 남편으로서 중심을 잘 잡아줄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리 oo가(저) 다른거 많이 했으니까 전 부치는 거 정도는 저도(남편) 할 수 있어요, 뭐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거다.

 

남편 - 다른 날도 아니고 명절이다. 명절까지 며느리가 그러고 싶나? 이해가 안간다. 니 편 들어주는거? 내가 우리엄마 앞에서 니 편들면, 우리 부모님이 아이고 그래 알았다 할거 같냐? 내가 그럴수록 우리 부모님 화만 돋구는거다. 너가 묵묵하게 며느리로서의 니 소임을 다 하는 모습을 우리 부모님이 보기 좋아하고 흐뭇해하실거고 널 더 예뻐해주실거다. 예뻐해주실수록 시키는 일도 줄어들지 모르고.

 

나 - 방금 그 말은 도저히 동의가 안된다. 진짜 오빠랑은 대화가 안 통한다. 부부는 평등한 관계다. 자꾸 며느리 며느리 그러는데, 오빠는 사위로서 우리집에서 일 해본적이 있나?

 

남편 - 사위 얘기가 왜 나오냐 아주 전형적인 물타기다. 그리고 부부가 평등하단 말도 맞고, 나도 너랑 평등한 사이였으면 좋겠다. 그런데 너가 어려서 그런지 몰라도 세상물정 모르고 자꾸 시댁에서 자기 편들어달라,전 부쳐달라는 소리나 하는데 어떻게 평등해질 수 있겠냐.

 

나 - 그래 알겠다 자꾸 논점이 흐려지는 거 같은데, 오빠가 후폭풍이 어쩌고 큰 그림이 어쩌고 했지만 나는 시댁에서 내가 고생할 때 날 도와줄 수 있고, 가운데에서 중심을 잘 잡아줄 수 있는 남편을 원한다. 오빠가 아까 나한테 며느리로서 할 일을 잘 하라고 요구했듯이 나도 이걸 요구하겠다. 서로 요구점을 잘 들어주는 걸로 합의를 보자.

 

남편 - 그래 니가 나한테 바라는게 정말 그거라면, 니가 원하는대로 해줄 수 있다. 후폭풍 감당할 자신 있나?

 

나 - 난 오빠가 말하는 그 후폭풍이라는게 없을거라고 본다. 대신 나도 며느리가 해야 할 일은 제대로 잘 챙겨서 하겠으니 앞으로 내가 명절 전후에 하는 일에 입대지 말았으면 좋겠다.

남편 - 알겠다. 다음추석까지 집에서 부침개 몇 번 부쳐보다보면 아마 명절에 내가 너 능가할 수도 있다. 그 때 놀라지나 마라(:이건 거의 농담조ㅎㅎㅎㅎ;;;)


이렇게 마무리하기까지 거의 2시간 ㅠ 동안 맥주 마셔가며 남편이랑 대화했습니다.

핑퐁게임처럼 말을 주고받은걸 한꺼번에 줄여서 합쳐쓰고나니 좀 짧아보이네요;;

 

아직 남편 생각이 좀 고루하고 가부장적인(?) 그런 면이 있는건 사실이지만, 본인 스스로도 다음 명절부터 뭐가 어찌됐든 음식준비를 돕겠다고 약속했으니 이번 추석 때는 조금 달라질 거라고 생각해요.

 

댓글에서 써주신 것처럼 뭐 집어던지고 소리지르고...까진 안했어도 할 수 있는 얘기는 다 했는데, 남편의 논리에 말문이 막힌달까? 그런게 좀 있었네요 ㅠ 저도 다시 쓰면서 읽어보니 제 스스로가 답답합니다. 그런데 막상 대화의 자리에서는 말문이 턱 막히고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뭐? 뭐래는거야?... 이러고 더이상 못 받아치겠어요 ㅠ 댓글보고 공부 많이 했는데... 제대로 못 써먹어서 죄송해요ㅠㅠㅠㅠ 이 정도가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던거 같아요 ㅠ

 

무튼 어제 그렇게 다 풀고 꼭 껴안고 잠들었고 오늘 아침 출근 때도 평소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남편과 냉전일 때는 집에 있어도 편하지 않고 마음이 무거웠는데, 아무튼 잘 풀어서 다행이에요 ㅠ

다음에 또 뭔가 남편과 어려운 다툼이 생기거나 하면 글 남기겠습니다. 사실 글을 안써도 될만큼 화목하게 지내는게 젤 좋겠지만요 ㅠㅠ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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