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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_결혼&이별_이혼썰

먹는 거 때문 이혼 생각하는 썰...

by 썰푼공돌 2023.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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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목 : 처 먹는 것 때문에 이혼하려구요

1년 연애하고 결혼한 지 1년 반 되었어요.
맞벌이이지만 직업 특성상 저는 집에서 일을 하는데
작업실이 집일뿐 (작업실을 따로 두고 싶었는데 신혼 때만이라도 집에 있기를 원해서)이지 수입은 제가 더 좋고 작업 강도도 세고 마감 때는 며칠씩 철야하기도 해요.
아무튼 저는 집에 있다는 이유로 집안일은 거의 제 몫이 되었고
특히 식사 준비는 제 전담이 되었네요.

뭐 여기까지도 괜찮았어요.
근데 남편과 제 식성이 너무 맞질 않아요.
저는 한식 파라면 남편은 양식 파이고
하다못해 고기를 먹어도 저는 담백하게 굽거나 삶은 걸 좋아하는데 남편은 양념해 볶는 걸 좋아해요.
연애 때는 서로 먹고 싶은 걸 번갈아 먹는 식이었고
잘 먹는 남자이고 밖에서 일을 하니 남편 위주로 차리긴 하는데
가끔 제가 먹고 싶은 음식을 하면 대놓고 불평불만이 점점 느는 남편이 이제 짜증 나고 싫어요.

그러다 며칠 전 저는 간단히 먹고 싶어 비빔국수를 하려고 했더니
남편이 퇴근해서 자기는 미트볼 스파게티가 먹고 싶다는 겁니다.
냉동실에 넣어둔 미트볼이 있긴 했지만 귀찮기도 하고
전 상큼하고 개운한 게 당겨서 남편이 씻는 사이 그냥 국수를 했어요.
그랬더니 나와서 집에서 먹는 그 한 끼를 자기 입맛에 못 맞추고 기어이 너 처.먹고 싶은 걸 했냐고 진짜 크게 화를 내는 거예요.
그 순간 그동안 쌓인 게 폭발하면서 화가 난다기보다는 남편에게 있던 모든 감정들이 싸늘히 식는 기분이 뭔지 알겠더라고요.

내가 집에서 일 할뿐이지 나도 노는 사람 아니고
앞으로 가사도 정확히 분담하고 특히 식사는 본인 입맛에 맞는 걸로 각자 해 먹자고, 그게 싫으면 이혼하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처 먹는 걸로 이혼하자는 년은 세상천지에 너 밖에 없을 거다, 라며 웃더군요.

바로 시어머니께 전화해서 방금 한 말 그대로 얘기하고 이런 이유로 이혼할 거라고 했더니 남편은 미쳤냐!!! 소리 지르며 식탁에 놓여 있던 국수 그릇을 주방으로 집어던지고는 문 쾅 닫고 안방으로 들어갔고 국수 양념 다 튀고 고함치고 그릇 박살 나는 소리며 문 닫는 소리는 시어머니도 들으셨죠.

두 시간쯤 있다가 시부모님이 오셨고 자기 부모님 보더니 더 길길이 날뛰는 남편을 일단 데리고 시댁으로 가셨습니다.
오늘도 전화해서 잘 알아듣게 얘기했으니 먼저 전화해서 마음 좀 풀어주라길래 전 이혼 결심에 변함이 없다고 하니 살다 보면 별별 일이 다 있는 건데 이런 일로 이혼 얘기 쉽게 꺼내는 거 아니라고 독하다며 끊으시더군요.

친정 부모님은 늘 제 의견을 존중해 주시는 분들이라 네 결정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나중에 후회될 일은 아닌지 신중히 생각해 보라셨고,
저도 이딴 일로 이혼녀 딱지 다는 게 걸리지 않는 건 아니지만
일 년 반 사는 동안 아니다 싶으면 하루라도 빨리 끝내는 게 낫지 않나 느낀 게 한두 번이 아니라 다시 잘해보고 싶은 마음이 안 생겨요......

이게 진짜 고작 처.먹는 일일뿐인 걸까요?
이혼 위기 넘기고 사시는 분들 어떠신가요?

추가

써봐야 뭔 의미인가 싶지만
신랑이 퇴근하고 왔을 때 이미 비빔국수 준비 중이었고 신랑도 봤어요.
근데도 미트볼 스파게티를 해달라 했고 제가 오늘은 그냥 국수 먹자고도 했는데 씻고 나오더니 그런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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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후기를 따로 쓸 생각은 없었는데 너무 많은 분들이 조언해 주셔서
어떻게 됐는지 쓰는 게 예의인 것 같아 남겨요.

어제 저녁에 남편이 시어머니와 함께 집으로 왔습니다.
친정 부모님께는 여기 글을 올리고 댓글들도 보고 좀 더 생각하고 이혼을 완전히 결심한 후에야 년이라고 했던 것과 그릇을 던진 얘기까지 했더니 무척 걱정하셔서 가까이 사는 외삼촌이 와 주셨고요.

뭐 끝끝내 의견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일단 미안하다, 전부 본인이 잘못했다 사과했지만
집에 있는 나는 본인이 없을 때 먹고 싶은 음식으로 식사를 할 수 있으니 저녁만큼은 자신의 식사를 좀 더 배려해 주길 바랐고,
그릇을 집어던진 건 다짜고짜 어머니께 전화해 이혼하겠다는 생각 없고 이기적인 행동에 화가 나서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긴 원래 가까운 사람에게 좀 조심성 없고 편하게 대하는 성격이라 그렇게 말한 것뿐이지 악의는 전혀 없었다고 하더군요.
그 말에 우리는 진짜 맞지 않는 사람들이었구나 싶었어요.
난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예의를 지키고 애정을 깊게 주는 편이라고 했더니
자긴 그렇게 매 순간 긴장하며 불편하게 살 자신이 없다고 하길래
그러냐, 나는 편하다는 이유로 가장 가까워야 할 남편에게 욕 듣고 남편이 박살 낸 그릇이나 치우며 살 자신이 없다, 그러니 우린 이혼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시어머니는 그 상황에 우리 애가 잘못한 거 인정하지만 욱하게 만든 데에는 제 책임도 있고 이러면서 서로 조심하고 부부간 정도 드는 거라는 어이없는 말을 하더니, 애 하나 안 낳고 1~2년 만에 이혼하면 하자 있다 소리 들을 텐데 기어이 자처해서 이혼녀 돼서 좋을 게 뭐 있냐, 이혼 안 하고 애 가지면 집을 공동명의로 해주겠다는 제안을 하시더군요.

듣고만 계시던 삼촌이 사돈어른 딸이나 이년 저년 하고 밥상 엎는 남편이랑 부부간의 정 오래오래 쌓고 살라 하시고 우린 xx이 이 집 며느리로 살게 할 생각 없으니
집은 그냥 계속 아드님 주십시오,라고 되받아 쳐 주셨어요.

그랬더니 남편이 갑자기 울면서 죄송하다 다신 안 그러겠다 했지만 그런 남편을 보고도 아무 감정도 들지 않고 피로감만 느껴지는 게, 우리가 산 1년 반은 대체 뭐였나 허망하더군요...

그 후로도 시어머니의 원망이 대부분인 의미 없는 말들이 오갔지만
이 달 안으로 제 짐을 다 빼기로 하고 그때까지는 남편이 시댁에서 지내는 걸로 일단 얘기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아직 이혼이라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아서인지도 모르겠지만,
뭔가 후련하기도 하고 착잡하기도 하네요.

많은 분들의 조언 큰 도움 되었습니다.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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